이번 ‘스핀 아트’ 미술공모전의 주제는 양자역학에 나오는 스핀입니다. 양자역학은 세상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자나 분자 보다도 더 작은 세상 을 다루는 학문인데요, 이렇게 작은 세상에서는 초현실적인 일이 벌어 지곤 합니다. 그중 스핀이란 특정 원자의 질량과 같이 고유 특성 중 하 나로, ‘불연속성’, ‘중첩’, ‘얽힘’이라는 독특한 성질들이 있습니다. 이를 예술로 표현해보고자 본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시각적인 언어로 소통하 는 예술인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핀의 성질을 초현실주의 화가 인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 비유해 설명합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실제 작품 의도와는 무관할 수 있습니다)
안녕? 나는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스핀이야. 나는 입자들의 자기적 성질을 결정하는 물리량이야. 물리량은 질량이나 속도 같은 “값”인데, 전자와 양성자 안에서 나는 아주 작은 자석이랑 비슷해.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그 물체의 자성이 달라지거든.

사람들은 내가 한 축을 따라 빙빙 돌고 있다고 생각해서 스핀(spin)이라고 부르 고, 북극과 남극을 잇는 축을 따라 자전하는 지구에 비유하곤 해. 하지만 나는 지 구보다 훨씬 작은 곳에서만 존재해. 지구를 사과만큼 줄일 때, 지구에 놓여있던 사과를 같은 비율로 줄인 게 바로 내가 사는 세상이랄까.

이토록 작은 곳에서는 보통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많이 생겨. 마치 꿈의 세계나 무의식을 흥미롭게 탐구했던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 세계 같 지.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로 내 소개를 이어가 볼게.

불연속성 : 어쩌면 세상은 시계 초침처럼 움직일지도


마그리트의 (백지위임장)을 자세히 보면 말 탄 여인의 형상이 중간중간 잘려 있어. 흔히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말 탄 여인의 이미지는 잘린 부분 없이 이어져 있잖아? 그것처럼 인간이 사는 세계에서 질량이나 속도 같은 여러 값들은 연속 적으로 존재하지만, 입자만큼 작은 세계에서 스핀 같은 어떤 물리량은 이 그림 처럼 불연속적으로 존재해.

아주 작은 세계에서 입자들의 에너지가 양자화 되어있어. 원래 정해져 있는 에 너지 값만 골라 가질 수 있다는 뜻이야. 비유하자면 평소 나는 차분한 상태로 있 다가 에너지를 받으면 점점 신나는 상태로 올라가는데,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정해져 있는 거야. 이렇게 어떤 특정한 계단으로만 올라갈 수 있는 양자화 규칙 을 가지는 입자 친구들을 ‘양자’라고 불러. 대부분의 양자가 스핀의 성질을 가지 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의 양자화 규칙을 스핀으로 설명해 볼게. 양자가 어떤 에 너지 계단 값을 가지고 있는지는 양자 속 스핀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달라. 스핀 은 두 종류가 있는데, ½, 3/2 등 반정수의 스핀 값을 가지거나 0,1,2 등 정수 배 의 스핀 값을 가질 수 있어. 예를 들어, 빛의 입자인 광자는 스핀 값이 1이야. 이 때 스핀 값에 따라 갈 수 있는 에너지 계단도 달라져. 스핀 값이 1/2인 전자는 -1/2(다운 스핀) 또는 ½(업 스핀)으로 표현되는 두 개의 에너지 계단으로 갈 수 있지. 그리고 에너지 계단 차이에 해당하는 크기의 에너지를 받거나 내보내면 서 계단 사이를 오르내릴 수 있어. 이렇게 스핀들이 따르는 양자화 규칙을 포함 해서 양자들이 작동하는 법칙들을 정리한 학문이 바로 양자역학이야.

앞에서 내가 아주 작은 자석이라고 소개했지? 스핀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얘기 는 자석의 종류도 달라진다는 의미야. 앞서 소개한 스핀 ½ 상태로 다음 그림에 서 에너지 계단들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볼게

중첩 : 나는 낮과 밤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


낮과 밤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어? 마그리트의 (빛의 제 국)에서는 빛이 있어서 밝은 낮과 빛이 없어서 어두운 밤이 동시에 존재해. 내 가 사는 양자의 세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 양자의 각기 다른 상태 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거든. 만약 내가 -1/2(다운 스핀)과 1/2(업 스핀)인 두 가지 계단으로만 갈 수 있는 “스 핀-1/2 상태”라고 해보자. 그림에 낮의 밝은 상태와 밤의 어두운 상태가 동시에 그려져 있는 것처럼, 나도 서로 다른 두 상태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거야. 오해하지 마! 낮과 밤을 합쳐서 해 질 무렵 같은 애매한 상태에 있다는 게 아니 라, 서로 양자화 되어 구별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두 가지 상태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거야. 이것은 양자의 세계와 사람이 사는 보통의 세계가 다른 점이기 때문에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어. 그럴 때는 낮과 밤이 구별되어 있으면서 도 함께 그려져 있는 마그리트의 그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확률로 표현 하자면 나의 절반(50%)은 한 상태에 있고 나머지 절반(50%)은 다른 상태에 동 시에 존재하는 거지. 이게 바로 양자의 ‘중첩’이라는 성질이야.

얽힘 : 하나를 알면 나머지도 자연스레 알 수 있어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2)는 어떤 게 풍경이고 어떤 게 그림인지, 캔버스 모양을 한 구멍으로 풍경이 비치는 건지 혹은 이 모든 것이 그냥 그림일 뿐인지 구분할 수 없어. 바다와 캔버스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수평선을 보면 서로 다른 두공간이 연결돼 보이지.

만약 캔버스의 바다에 파도가 친다면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문 밖의 바다에도 파도가 치고 있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어. 양자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상태를 ‘얽힘’이라고 불러.

내가 다른 스핀과 얽혔다고 해보자. 얽힌다는 건 나와 친구가 정보를 공유한다는 말과 같아. 그래서 누군가 내 상태를 알면 바로 나와 얽혀 있는 스핀의 상태도알 수 있지.

그러면 정말 미묘한 일이 벌어져. 나와 내 친구 사이의 거리가 아주 멀어서 우주반대편에 있더라도 내가 가진 정보를 들키면 내 친구가 가진 정보도 들켜버리는 거야. 마그리트 그림에서 캔버스와 바다의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한쪽에서파도 치면 다른 쪽도 파도 칠 거라고 예상하듯이 말이야. 신기하지? 사람이 사는 보통의 세계라면 우주 반대편에 있는 정보를 알아내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걸릴 텐데 말야.

이런 특성 덕분에 스핀을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어. 0과 1이라는 숫자를 이용해 컴퓨터에 수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것처럼, 스핀도 아주 작은 자석으로 잘 활용하면 정보 저장소로 쓸 수 있거든. 그런데 스핀들이 얽히면 정보를 공유하게 되니까, 엄청나게 빠른 통신체계나 컴퓨터를 만들 수 있게 돼. 양자암호,양자컴퓨터, 양자전송 같은 기술이지.

환경에 따라 변신도 가능!


스핀인 내가 양자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좀 더 말해줄게. 마그리트의 (헤지테이션 왈츠)에는 가면을 쓴 사과들이 있어. 가면을 쓴 사과들이라니! 말하고보니 사과가 꼭 사람 얼굴 같아 보이네. 심지어 눈, 코, 입도 없는데 뭔 가 진지한 표정을 가진 것 같기도 해. 사과에 그냥 가면만 씌웠을 뿐인데, 일 반적으로 아는 사과와 굉장히 다른 느낌이 들지?

그건 어떤 대상을 판단할 때 주위 환경도 함께 고려하기 때문이야. 가면이 없 었다면 책상 위에 놓인 평범한 사과처럼 보였을지도 몰라. 결국 사과를 둘러 싼 가면이라는 효과가 사과에 대한 인상을 새롭게 결정한 셈이지.

사실 스핀도 마찬가지야. 나는 혼자 있기도 하지만 내 주위 환경과도 상호작 용을 많이 해. 그래서 때로는 환경이 바뀌면 내 성질이 달라지기도 해. 그림 속의 사과처럼 무대 위에서 춤추고 있는 스핀을 상상해봐(스핀이라는 단어 의 원래 의미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쉬울 거야!). 내 춤의 종류는 무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거야. 다른 스핀과 함께 춘다면 전혀 다른 춤을 추기도 하겠 지. 하지만 이런 환경이 사라지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 나는 혼자 있기도 하지만 내가 서 있는 표면이나 다른 스핀과의 상호작용 같은 양자역학적 환 경의 영향도 받기 때문이야.

스핀이 만드는 새로운 일상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평소에 접하기 힘든, 굉장히 새롭고 낯선 느낌을 줘. 사람 들은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마그리트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마주하며 평소 에 접하지 못한 걸 감각하거나 현실의 이면을 발견하기도 하지. 내가 사는 양자 역학 세계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이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자연 법칙이 이 작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양자의 발견은 기존의 물리적 세계관을 완전히 무너뜨릴 정도로 충격적이었어. 이후 앞서 이야기한 불연속성, 중첩, 얽힘 말고도 더 많은 신기한 성질들이 있다 는 게 밝혀졌지.

너무 작고 낯설어 사람과는 동떨어진 세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우리 스핀 들은 생각보다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있어. 빛, 원자로 이뤄진 모든 물체, 눈 앞 의 스마트폰, 멀리는 양자컴퓨터 같은 기기들까지. 사람들이 벌써 양자역학, 그 중에서도 특히 스핀이라는 값을 이용해 많은 것을 하고 있거든.

양자역학은 더 이상 충격적이고 낯선 이야기가 아니야. 사람들이 사는 세계의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어. 세상을 바꾸는 양자역학과 그 안의 스핀에 대해, 함께 더 알아가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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