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양자 나노과학이 무슨 상관?
같은 곳을 향하는 예술과 과학
이번 미술공모전의 주제는 양자 나노과학입니다. 양자도 나노도 과학도 뭔지 모르겠다고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친절한 해설 글을 준비했습니다. 양자와 예술이 어떻게 만나는지 한 번 살펴 봅시다. 읽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거예요.
글_김진경 (양자나노과학연구단 QNS, 이화여자대학교 석박사 통합 과정)
쇠라의 점묘법이 물리학에?
‘빛’이 과학자와 예술가에게 아주 흥미로운 주제였다는 것을 아세요? 특히 빛은 19세기에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아주 중요했습니다. 이들은 물체마다 고유한 색이 있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우리 눈이 색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연구 했습니다. 물체 자체보다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에게 더 집중한 것이죠. 즉, 빛으로 보는 세상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사과를 빨간색뿐 만 아니라 빛의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갈색 혹은 검은색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보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담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위와 비슷한 시기에 물리학에서도 ‘빛’에 대한 인식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빛을 물결 같은 파동(전자기파)로 본 과거와 달리, 아주 작은 낱알처럼 입자로 행동하는 성질도 있음을 밝혔습니다.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빛이 끊겨 있다는 말입니다. 끊겨 있는 빛이라니, 어떻게 이런 모순이 가능할까요?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라는 실험을 통해 빛은 물결 같지만 동시에 공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1) 아인슈타인은 빛을 입자화 하여 각각을 light quantum, 즉 광양자라고 불렀습니다. 이때 양자 (Quantum)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무엇이 양자화되었다는 것은 낱알로 돌아다니는 입자 같다는 뜻입니다(가장 대표적인 양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인 원자 속의 양성자와 전자라는 입자들 입니다). 세상은 양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빛을 비롯해 자연 자체가 불연속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빛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은 우리가 보는 세상이 연속적인 것 같아도 실은 끊겨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조르주 쇠라가 대표적인 점묘법을 생각해봅시다. 쇠라는 점묘법이라는 기술을 만들어서 세상을 점으로, 즉 양자화하여 그렸습니다. 이는 그전까지 연속적인 선들만 존재한 회화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쇠라의 묘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빛의 실제 형태와 유사했습 니다.

조르주 쇠라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 Jatte] (1884)
빛으로 보는 세상을 점으로 표현한 쇠라. 아인슈타인은 빛이 실제로 입잘같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사벨 M. 마르티네스의 Quantum Blink Series 중 [Cross walk] (2011)
양자의 특성을 주제로 한 작 품. 작가는 “양자역학에 따르면 우리는 초당 40회의 의식적인 순간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뇌는 이 순간들을 연결하여 이미지화 한다. 만약 우리가 끊어서 본다면 어떻게 될까?” 라고 말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Woman with Watch] (1932)
피카소가 여인의 정면과 측면이 동시에 보이도록 그렸습니다. 양자 세계에서도 서로 다른 두 상태가 혼재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양자 중첩).

토끼-오리 그림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가 좋아하는 그림. 비트겐슈타인은 이 그림을 토끼 혹은 오리 둘 중에 하나로만 지각하며, 동시에 둘 다 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양자의 세계에 넣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안토니 곰리 [Quantum Cloud] (1999)
작가는 양자역학이 묘사하는 세계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작품 속 구조물들끼리 복잡하게 엮여 있고, 작품과 배경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작품과 배경이 서로 얽혀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배경도 작품의 일부가 됩니다.
양자가 불러온 완전히 새로운 세계
양자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까요? 양자는 나노 스케일(10-9m) 의 아주 작은 세상 속에 있습니다. 양자의 등장은 그 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완전히 갈라 놓았습니다. 양자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고전 물리학이 완벽하게 해석해 놓았던 기존의 세상을 뒤집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양자들은 파동이면서 입자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자가 어느 곳에 어떠한 상태로 있는지 오로지 확률로만 알 수 있습니다.2) 이는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다는 슈뢰딩거의 고양이3) 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슈뢰딩거 고양이는 유명한 토끼-오리 그림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볼 때 토끼나 오리를 둘 중에 하나로 봅니다. 일반적으로 그 둘을 동시에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양자 세계 안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 그림은 50% 는 토끼고 50%는 오리인 상태가 됩니다. 상자 안의 그림은 누가 토끼나 오리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양자 세계에서는 여러 상태가 동시에 겹친 채로 있을 수 있으며, 이를 중첩(superposition)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고전 물리학에서는 디지털 정보인 비트의 0과 1이 각각 다른 상태입니다. 그러나 양자 물리학 (양자역학)에서는 이 두가지 상태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이는 피카소가 대상의 정면과 측면을 섞어서 한 대상을 그린 것과 유사합니다. 피카소는 대상을 하나의 시점(원근법)만으로 그렸던 기존의 미술계를 뒤집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법은 양자 혁명처럼 예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양자 세계의 또 다른 성질은 얽힘(entanglement)입니다. 얽힘이란 두 가지 이상의 양자를 매우 멀리 떨어뜨려 놓아도 서로 얽혀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입니다. 원래는 두 물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상호 작용이 일어날 확률이 0에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서로 얽혀 있는 두 양자 중 하나를 알면 거리와 무관하게 나머지 양자의 상태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얽힘에 의해 두 양자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매우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양자가 보이는 끊김(불연속성), 확률, 중첩, 얽힘 등의 특성은 옛날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자의 세계가 드러나면서 기존의 과학을 뛰어넘어 새로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삶에 대한 답을 찾는 길
폴 고갱은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정체성을 고민하며 이런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자는 자연의 기본적인 속성으로, 세상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신개념을 제공했습니다. 양자의 결론에 의하면 세상은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률로, 추상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의 인식을 벗어난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고 있죠.
예술과 과학은 인간과 자연을 탐구하고 표현합니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이죠. ‘얽힘’ 상태의 예술과 과학, 그들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이것은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써 의미가 있습니다. 과학과 예술이 서로에게 좋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기를, 또 그로 인해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결과물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