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역사에서 과학자들의 생각은 현실이 됐다

2020년 3월 16일

지난 9월 개봉한 영화
<양자물리학> 포스터
출처: 메리크리스마스
양자역학의 역사에서 과학자들의 생각은 현실이 됐다

“양자역학적으로 당신과 나의 파동이 맞으면 공명이 일어나서 에너지가 커집니다. 이런 게 바로 시너지 효과라는 거죠!”

최근 개봉한 영화 ‘양자 물리학’에서 주인공 박해수(이찬우 역)가 성대한 클럽을 개업할 준비를 하며 투자자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박해수는 양자물리학에 나오는 표현들을 자신의 사업 철학에 녹여 끝없이 판을 키운다.

실제 ‘공명’이 일어난 모양인지 클럽 오픈에 성공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박해수가 자주 언급하는 다른 멘트는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다. 오픈한 클럽에서 유명 연예인의 범죄 사건에 연루되면서 일이 꼬이는데,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말을 되뇌며 주문처럼 믿는다. 걷잡을 수 없이 규모가 커지는 사건 때문에 곤경에 처한 주변 인물들도 영화 전반에 걸쳐 이 말에 힘을 얻는 느낌이다.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게 물리학적으로 사실일까. 모두가 알듯이 누군가가 생각한다고 다 현실이 되지 않으며 영화 속에서도 그 말이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신념처럼 쓰인다. 그러니 그 말 자체는 틀렸다고 본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역사 속에서 과학자들이 ‘생각’한 내용이 ‘현실’이 됐다는 면에서는 사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모든 과학이 마찬가지겠지만 양자물리학은 처음 세워질 때부터 특별히 혁신적인 ‘생각’이 많이 필요했던 학문이다.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 가정 하에 해석해야했기 때문이다.


양자 역학의 모든 것이 담긴 이중 슬릿 실험

비상식적인 현상 중 가장 대표적인 이중 슬릿 실험을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양자물리학이 이 실험에서 시작됐다고 여겨도 될 정도로 유명한 실험이다. 실제로 현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의 모든 것이 이 실험 속에 들어있다”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는 공과 같은 입자가 있고 파도와 같은 파동이 있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공은 던지면 위치가 바뀌지만 파동은 그렇지 않다. 경기장의 관중이 이루는 파도타기를 생각해보자. 파도타기가 한쪽으로 흐르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제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는 것일 뿐 실제 이동하지는 않는다. 빛, 소리 등도 이렇게 전달되는데 에너지만 흐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서로 다른 파동들이 만나면 재미있는 현상들이 일어난다. ‘양자물리학’ 영화의 박해수가 말한 것처럼 진동수가 같은 파동이 만나면 세기가 강해진다. 이를 공명이라 부르고 공명 에너지는 매우 강력해질 수 있다. 일례로 1940년, 미국의 타코마 다리는 준공된 지 고작 4개월 만에 주저앉았다. 약한 바람이 불었지만, 다리가 흔들리는 진동수와 주변 바람의 진동수가 같아서 공명이 큰 에너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 파동이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가면 간섭이라는 현상을 보일 때가 있다. 이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예는 없어서 이중 슬릿 실험 그림으로 살펴보자. 아래 그림은 전자들을 쏘는 전자총과 세로로 난 구멍이 2개인 판, 즉 이중 슬릿, 그리고 그 너머에 전자를 맞으면 색이 변하는 스크린이 있는 모습이다. 이중 슬릿을 향해 전자총을 쏘면 두 슬릿 사이를 지나가는 전자들이 파동처럼 간섭을 일으키며 여러 줄의 무늬를 만든다. 이를 간섭무늬라고 부른다. 간섭무늬는 파동에서만 생기는 현상이다.
여기서 잠깐, 매우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전자가 작은 입자라고 배웠다. 그렇다면 왜 간섭무늬가 생기는 걸까? 입자들은 간섭을 하지 않는데 말이다. 전자를 입자라고 굳게 믿었던 과학자들은 전자총이 만든 이 간섭무늬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입자인 전자가 슬릿들을 어떻게 지나가길래 무늬가 생기는 건가 확인하기 위해 각각의 슬릿 앞에 전자 검출기를 달았다. 그리고 전자가 어느 쪽 슬릿을 지나가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전자들이 눈치를 채고 행동을 바꿨다. 간섭무늬가 사라지고 아래와 같이 두 줄만 생긴 것이다! 간섭무늬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믿기 힘들겠지만 전자의 경로를 관측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진 것이다. 마치 전자가 자신이 관측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같은 결과인데, 정말 믿기 어려운 현상이다.
이 실험의 중요한 결론은 전자가 파동의 성질을 보일 때도 있고 입자의 성질을 보일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물리학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가졌다. 양자역학을 세운 사람 중 하나인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을 접하고도 놀라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만약 이중슬릿 실험을 처음 접했는데 놀라지 않았다면 뭐가 이상한 건지 이해가 갈 때까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물리학자들은 입자이자 파동인 전자의
이중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출처: Pixabay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

학계의 열띤 토론에 토론을 거쳐 물리학자들은 전자의 이중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전자가 입자 같을 때도 있고 파동 같을 때도 있다고 ‘생각’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는 기존 고전물리학과는 정반대의 생각으로, ‘혁신’ 그 자체였다. 신기하게도 이 생각에서 양자역학이 출발했고 우리 삶에서 ‘현실’이 되었다.

양자역학은 우리 일상에서 매우 밀접하다. 컴퓨터, 스마트폰, 카메라 등 거의 모든 전자기기가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양자역학적 효과는 전자 소자가 작아질수록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양자역학이 자주 쓰이고 있다는 면에서, 영화 속 박해수의 말처럼 생각이 현실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가가도넛」, 말탁진 作

예술로 재탄생한 양자역학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매력 때문인지 양자역학은 미술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학계에서도 힘들게 받아들여진 전자의 이중성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미술 작가들이 있다. 이호탁, 이려진, 조말 작가로 이루어진 말탁진 팀이다.

그들의 작품 ‘가가도넛’을 보면 원탁 위에 쇠구슬들이 원을 그리며 운동하다가 중앙의 구멍으로 떨어진다. 자세히 묘사하자면 전자를 상징하는 쇠구슬들이 전자총에서 나오듯 하나씩 원탁 위로 떨어져 원을 그리며 중앙을 향한다. 이 원형의 운동이 파동을 의미한다. 원탁 아래에는 여러 개의 자석이 회전하고 있는데 쇠구슬이 자석을 만나면 운동을 멈추고 붙는다. 이는 외부 관측에 의해 파동에서 입자로 바뀐 전자를 표현한다. 이중 슬릿 실험에서 슬릿 앞에 검출기를 달면 전자가 갑자기 파동에서 입자로 행태를 바꾸는 것을 표현했다. 돌고 있던 자석이 원탁에서 멀어져서 쇠구슬이 떨어지면, 마치 전자가 다시 파동으로 돌아가듯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 관측 여부에 따라 전자의 이중성이 돌변하는 이중 슬릿 실험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하였다. 말탁진은 “이중 슬릿 실험에서 관측되는 순간 파동에서 입자가 되는 전자의 모습을 비유하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하나, 혹은 두 개의 향」 조민정 作
‘하나, 혹은 두 개의 향’이라는 작품을 만든 조민정 작가는 인간 존재의 실재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다가 물질의 근원을 다룬 양자역학을 접했다. 그리고 양자역학에서 배운 내용을 타들어가는 향으로 비유했다. 이 작품은 촬영된 실제 연기와 목탄 드로잉을 결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한 장의 종이 위에서 그리고 지우는 행위를 반복하며 얻은 드로잉들은 총 176번의 스캔을 통해 서서히 타들어가는 향의 모습을 구현했다.

조민정 작가는 “작품 속 두 향은 똑같은 드로잉 이미지이지만 디지털 편집 과정을 통해 마치 한 개의 전자가 이중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듯이 각 각 두 개의 향으로 존재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작가가 두 향을 구성하는 드로잉의 순서와 시공간을 조금씩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두 향의 시간적 층위가 미묘하게 어긋나게 했기 때문에 두 향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고정불변의 유일한 자아가 과연 존재하는지, 나와 같거나 다른 수많은 내가 존재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트위스트」, 임명희 作
‘양자 중첩’이라는 또 다른 양자역학적 성질을 표현한 작품도 있다. 바로 임명희 작가의 ‘트위스트’다. 고전역학에서는 물질이 움직이고 있거나 정지해 있거나 둘 중에 하나인 것처럼 한 가지 상태에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이 여러 상태 중 어느 것인지 확률로만 정의된다. 이를 중첩이라고 부른다.

작품 ‘트위스트’에서는 춤을 추는 여인의 모습이 여럿 겹쳐져 있어서 위치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여인이 춤을 추었던 위치는 오로지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마치 양자 중첩의 상태처럼 말이다. 작가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위치에서 춤추는 여인의 사진을 촬영 및 인화하여 여러 장의 임시 필름을 만든 후에 검프린트 작업을 통해 다시 하나의 이미지에 담아냈다. 본 작품은 작가의 기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연구협력관의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에 영구히 전시될 예정이다.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의 미술공모전 <양자의 세계>

위 작품들은 기초과학연구원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이 올해 주최한 미술공모전 ‘양자의 세계’의 출품작들이다. 일반적으로, 연구 내용을 연구진이 직접 설명하게 되면 비전공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반면 대중이 대중에게 이야기를 할 때는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착안해, “양자의 세계”는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의 연구 주제인 양자 나노과학을 새로운 방법으로 대중에게 알리고자 기획한 공모전이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일반 대중과 미술 작가들이 연구 내용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예술로 표현했다. 앞서 소개한 ‘가가도넛’과 ‘하나, 혹은 두 개의 향’은 각각 3등과 1등(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상)을 수상했다. 기타 수상작과 본선 출품작들은 https://qns.science/art에서 감상할 수 있다.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2019년 4월, 공모전 참가자들에게 연구단의 연구를 소개하고자 “미술과 양자나노과학이 무슨 상관?”이라는 주제로 해설 강연 및 토론의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이 때 70여명이 참석해 2시간 넘게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강연 참석자 대부분이 전문 미술 작가였다. 토론의 현장에서 양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2019년 6월 말 마감이었던 예선에는 400여명이 참가했으며 본선을 거쳐 이 중 5점이 수상했다. 시상식은 9월 26일 양자나노과학 연구단 헌정식에서 진행했다. 2019년 가을에는 수상작을 비롯한 본선 출품작 44점으로 이루어진 전시회를 이화여자대학교 연구협력관에서 열었다. 이 전시를 관람하며 실험실도 둘러볼 수 있는 ‘“양자의 세계” 미술 전시회 기념 오픈 랩’을 11월 22일에 열었다. 수상작 해설을 작가에게 직접 듣고,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의 재미있는 특강과 실험실 투어, 연구진과의 자유로운 대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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