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공모전 양자의 세계

안녕하세요. 기초과학연구원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이화여자대학교)에서 “양자의 세계”라는 독특한 주제로 미술공모전을 개최했습니다. 공모전을 통해 저희 연구단의 연구 주제인 양자(Quantum)를 소개하고 수상작과 본선출품작을 새롭게 설립된 이화여자대학교 연구협력관에 전시했습니다.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저희 연구에 대해 대중과 소통함으로 사회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본 미술공모전은 저희 연구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효과적인 통로를 만들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저희는 저희 연구를 창의적인 방법으로 공유하고자 공모전 전반에 걸쳐서 기초과학연구원과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이 세계적인 연구를 하고 있음을 소개했습니다. 연구진이 직접 대중에게 연구를 쉽게 소개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이번 공모전을 통해서 미술 작가를 비롯한 대중과 함께 보다 매력적인 이야기로 양방향적인 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이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의 연구 주제들을 이해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거쳐 본 전시가 완성되었습니다.

※ 본 공모전은 연구비가 아닌 예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공모전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https://qns.science/kr/art2019-notice/에 있습니다.

양자의 세계 전시회 도록 다운로드



단장 인사말

Andreas Heinrich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예술과 기초과학이 추구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두 분야 모두 창의적이고 비선 형적이며, 직업적 측면에서도 독특합니다. 두 분야 모두 후원에 의존합니다. 예술가들에 게는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며, 과학자들에게는 세금을 내는 국민이 있어 야 합니다. 또한 두 분야 모두 계속해서 가치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 가치는 즉시 확연하 게 드러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예술가와 과학자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 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예술은 의식을 탐구하는 내면 성찰의 작업인 데 비해, 과학은 외부 현실에서 보 편적이고 확실한 진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번 공모전에서 양자 나노과학 연구단(QNS)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진행했습니다. 연구단은 예술가들에게 양자 나노 과학에 대해 알려주고,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들을 해석하면서 다양하고 새로운 방 식으로 물리학에 대해 이해했습니다. 양자나노과학 연구단 대학원생 김진경 씨가 예술과 양자 나노과학의 만남에 관하여 쓴 뛰어난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7쪽 참조).

김선희 대외협력팀장은 이번 공모전을 기대 이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줬습니다. 예술가 들과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이 매우 원활하게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김선희 대 외협력팀장의 덕분입니다. 공모전에 참가하는 예술가들이 낯선 물리학의 세계를 이해하 려고 할 때 생기는 다양한 질문들을 김선희 팀장은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답해주었습니 다. 그 결과 이번 공모전에 400점이 넘는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예술가와 물리학자로 구 성된 심사위원단이 수상작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뛰어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양자나노과학 연구단과 연구단의 연구활동을 창의적으로 해석해준 예술가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이번 공모전을 계기로 저희 연구단과 예술가들이 오래도록 협력적인 관계를 쌓아 가기를 희망합니다.

※ '양자의 세계' 미술 전시회 전시장 갤러리 : 사진 갤러리



수상작

1등 -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상

One and Two Incense
조민정
하나, 혹은 두 개의 향
영상
2019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촬영된 실제 연기와 목탄 드로잉을 결합한 애니메이션입니다. 한 장의 종이 위에서 그리고 지우는 행위를 반복하며 얻은 드로잉들은 총 176번의 스캔을 통해 서서 히 타 들어가는 향의 모습으로 구현되었습니다. 작품 속 두 향은 똑같은 176개의 드로잉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매체를 통한 편집 과정에서, 드로잉의 순서와 시/공간이 서로 다르게 배치되고, 두 향의 시간의 층위는 미묘하게 달라집니다(영상 편집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각 소스의 위치와 공간의 점유가 곧 시간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두 향은 서로 같거나 다릅니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원자의 운동을 기 술하는 양자역학에서는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속도)은 동시에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측 정 전까지는 그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까지 말합니다. 이러한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 존재 에 대해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고정불변하는 유일한 자아는 과연 존재할까요? 나와 같거나 다른 수 많은 내가 존재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서로 모순되는 상태를 동시 에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실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작품 속 향은 언제, 어떻게 발화했는지 모른 채 정해진 끝을 향해 무엇이 되어가는 나의 존재 그 자체이며, 또한 우주의 무한한 경우의 수를 상상하는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2등

Untitled 2
윤민지
Untitled 2
가변 설치, 돌
2019

작품 해설

파도의 포말 바람 풀 꽃 골목길 사슴벌레 석류 탄생 도시 사람 국경선 물고기 노을 죽음 가족 수평선 발자국 거위 옹이 흙 나뭇가지 공기 일기 집 사랑

양자역학은 ‘나’라는 개인이 살아온 삶의 풍경과 더불어 지금 이 순간의 제가 사람과 세상, 사물, 그리고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현 상들을 지각하고 이해하는 시선의 방향과 닮았습니다. 저는 어 릴 적 불안정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성장하며 세상은 제 자신이 홀로 오롯이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 을 배웠습니다. 탄생과 죽음, 생성과 소멸의 순환, 사랑과 같은 감정을 비롯하여 일상과 도시의 풍경이 되는 사물이나 건축물처럼 인간이 설계한 모든 요소들은 저의 온전할 수 없는 통제의 경계 너머를 오가며 자라나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 순리 앞에 예외 없는 존재로서 일상의 가운데 수많은 것들의 상실을 한 번에 경험하게 된 적이 있는데, 그 때 처음 ‘불확실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무제(Untitled)’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하나의 대상이 갖는 ‘실재성’이 함축하고 있는 또 다른 성질은 ‘비실재성’, 그리고 그 이외에 ‘잠재성’이라는 사이 시공간적 상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부터 작업의 설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긴장된 상태의 운동성을 내포한 오브제를 제작하고 설치하며, 잠재적인 발화 상태(확률로써의 운동성)로서의 사물, 그것에 감응하고 관찰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그 발화의 미묘한 시작점에서 사물들을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조건을 설정, 발견하고 조정(걷어내거나, 추가하거나, 변화시키는)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의 작업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거시적 관점에서는 공간성을 전체적으로 활용하는 설치 작품으로서, 가장 주의를 기울인 세부적 작업 요건은 ‘창 너머의 빛, 거울 너머의 공간을 포함하는 전체 공간, 돌, 열린 문’ 입니다. 닫히지 않는 공간으로서의 경계 너머의 궤도, 그 열림의 상태 안에 일상적인 질료들을 비일상적인 상황으로 정렬함으로써 발생되는 긴장감을 관찰하고, 움직이는 자연의 빛을 반사하는 공간, 흘러가는 시간, 그 시공간 속에 임시적으로 놓인 오 브제의 상태, 그 모든 것을 인지하며 흘러가는 사람의 인식 등 저는 영원하지 않고 완전하지 않은 모든 것들의 동시적인 움직임에 대해 생각합니다. 더불어 빛의 흐름이나 사람의 물리적인 움직임 등, 아주 작은 하나의 변화에도 모든 것이 새롭게 정렬되고 정의될 수 있는 미술적 가능성을 지닌 시공간, 그 잠재적 상황은 매 순간 모든 종류의 운동성이 가해지거나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확률적으로 간직한 채 이 곳에 있습니다. 즉, 잠재적인 상태로서의 실존(확률로써의 상태), 바로 그 지점이 ‘나’, ‘우리’를 아울러 하나의 대상이 형식적 조건의 경계 너머에서 의미적으로 가장 명료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고유한 방위가 아닐까요? 동시에 이와 같은 지점은, 양자역학에서 관찰자를 배제하는 조건의 운동 상태를 은유하는 태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실존하지만 실존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잠재성, 정의하지만 정의되지 못하는 영역으로서의 잠재성,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기 자신으로 회귀할 수 있는 정점으로서의 잠재성, 실존 그 자체, 고유한 존재적 위치에서 발견되는 내재적 초월성, 비질료적 사이 공간이 갖는 비언어적 경험, 발화되지 않은 채 영원히 발화되지 못할 지점이 주는 매혹과 같은 부분들을 함축합니다. 더불어 하이젠베르크가 제외한 ‘궤도 위의’ 전자, 행렬역학으로 표현되는 양자의 상태, 과연 그것이 실제 오브제와 빛(시간성), 공간이 함께 결합하여 표현될 수 있는 상태의 미술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2등

밤의 환영으로부터 온 상태메세지 - 겹쳐지는 다중세계
윤인선
밤의 환영으로부터 온 상태메세지 - 겹쳐지는 다중세계
#1: 90×450 cm, #2-3: 90×270 cm #4-5: 90×275 cm #6-7: 90×216 cm, 디지털 프린트, 스테인리스강
2018

작품 해설

“Eden, nocturnal visuality
arriving from the abyssal.
Haunting images,
transparent accident,
appearance of the impossible.”

“회화 이후의 회화(post-painting)”라고 명명하고 있는 저의 작업은 스트라이프(stripe) 패턴을 중첩시키는 행위의 반복(layering)을 통해 회화(painting)를 성찰하는 디지털 실험입니다. 10여년간 회화 작업을 했던 저는 2015년부터 컴퓨터 그래픽과 설치작업으로 “탈회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밤의 환영으로부터 온 상태메세지—겹쳐진 다중세계>는 냉담함(coldness)과 유머가 공존하는 이중적인 정서와 디지털 이미지가 회화(painting)적으로 전유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스트라이프 패턴을 시각성의 중심에 두고, 여러 기하학적 모티브가 유영하는 다수의 레이어(layer)들을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들 이미지는 무수한 다중우주(multiverse)를 내재하고 있는 양자의 세계를 닮아있습니다.

이 작업은 다중세계의 동시적인, 혹은 교대적인 나타남과 그 불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어떤 “결핍의 경험”과 “실어(失語) 상황”을 연출하여 상상력에 균열을 일으키고자 하였습니다



3등

Gaagaadonut
말탁진(조말, 이호탁, 이려진)
가가도넛
100×100×100 cm, 혼합 재료
2019


작품 해설

유리처럼 매끄러운 표면의 널따란 나무 그릇이 있습니다. 여러 개의 쇠구슬이 ‘따닥’ 소리와 함께 줄지어 나타나 그 위를 둥글게 구릅니다. 그릇의 한 가운데에는 쇠구슬 한 개가 지날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이 자리합니다. 달리는 구슬은 공간의 왜곡과 당기는 힘에 의해 서로 간격을 좁히기도, 부딪혀 방향을 바꾸기도, 불현듯 멈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가운데로 빨려 들어갑니다. 구멍 아래로는 쇠구슬이 다시 그릇 위로 오를 수 있는 선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길 위에 무사히 낙하한 구슬들은 앞서간 구슬의 궤적을 쫓아 일련의 원운동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거대한 완구처럼 보이는 작품 《가가도넛(Gaagaadonut, ‘Gaagaa’는 ‘데굴데굴’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양자의 세계, 곧 미시 세계에 대한 작가의 상상을 담고 있습니다. 〈코펜하겐 해석〉의 관점에서 이중 슬릿 실험 결과를 해석하면, 전자(혹은 빛)는 관측하기 전까지는 파동이었다가 관측하는 순간 입자가 됩니다. 다시 말해, 관측되기 전까지 전자의 상태는 중첩된 확률로서 존재하지만 관측하는 그 순간 더 이상 확률이 아닌 한가지 성질로 정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릇 위를 구르는 쇠구슬은 전자에 비유되었습니다. 그들의 원운동은 회절과 간섭의 성질을 가진 상태, 즉 관측 전 전자의 상태가 파동임을 암시합니다. 그릇 하부에는 천천히 회전하며 상부에 자력을 제공/제거하는 가변 장치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일정 주기로 점멸하는 장치의 영향권 안에 쇠구슬의 위치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자력과 구슬은 서로를 포착합니다. 마치 ‘관측자’에게 측정된 순간 비로소 입자가 된 전자처럼, 쇠구슬은 움직임을 멈추고 일정 시간 표면에 붙잡힙니다.

관측이 대상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코펜하겐 해석〉에는 많은 비판이 따랐지만, 과학에서의 ‘관측’, 넓게는 ‘본다’라는 당연한 행위에 대해 다시 고찰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각예술 역시 말 그대로 ‘본다’는 행위로 세상을 탐구하고 이해하며, ‘보이는’ 행위로 표현하는 다분히 시각적인 학문임에 반해, 창작의 주체로서 ‘본다’는 개념 자체를 언어적 틀 안에서 한계 지어 온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 닐스 보어(N. Bohr)는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상보적으로 가지는 상태에 대한 언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시세계를 거시세계로, 거시세계의 인간의 언어로 가져오는 순간 설명할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본 작업에 앞서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각 언어의 방법론을 지우고자 노력했습니다. 간신히 잡히는 양자 개념과 재료를 연결하며 미시세계에 대한 시각화, 이미지 언어화를 실험하는 과정은 어두운 상자에 손을 넣고 더듬어 길을 내는 경험과도 같았습니다. 부분으로 존재했던 기계장치를 처음 조립하자 악기 같기도 하고, 획을 가진 고대 문자 같기도 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따닥’하며 끝없이 귀청에 닿는 쇠구슬의 잦은 울림은 어느새 선이 되어 고요한 감각을 선사했습니다.



3등

인식의 가벼움에 대하여
김다슬
인식의 가벼움에 대하여
130×193 cm, 혼합 매체(판넬에 스컬피, 젯소, 모델링 페이스트)
2019


작품 해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너무나 한정적입니다. 인간은 80% 이상을 시각에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방식은 대부분 시각으로부터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이해되고 정의된 것 같았던 현상들은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보이지 않는 기저에 무엇도 확정되지 않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중첩, 얽힘 그리고 끊김과 같이 현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것을 볼 수 없지만 동시에 보고 있습니다. 즉, 너무 작아서 감지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현실(세상)을 이루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법칙의 세계인 것입니다. 내가 주목한 것 또한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인간은 결과적 형태로써 확정된 모습을 지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 안에 인간이 볼 수 없는 양자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본 작품은 ‘우리가 만약 양자의 세상을 볼 수 있다거나, 양자의 특성이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현실에 적용된다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했습니다. 도시가 새로운 자연계라면, 양자세상의 도시에 즐비하게 서 있는 고층빌딩들은 쪼개지고, 다시 합쳐지기도 하고 전혀 다른 모양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역동하는 에너지가 가득 찬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움직입니다. 본 작품은 상상 속의 ‘양자-도시’의 한 장면을 포착한 것으로서, 양자에 대한 이해와 나아가 세상에 대한 이해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임명희 작가님의 기증 작품

트위스트
임명희
트위스트
69×130 cm, 아트지(포토 랙)에 디지털 프린트
2017


작품 해설

‘양자 중첩’이라는 양자역학적 성질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고전역학에서는 물질이 움직이고 있거나 정지해 있거나 둘 중에 하나인 것처럼 한 가지 상태에만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이 여러 상태 중 어느 것인지 확률로만 정의됩니다. 이를 중첩이라고 부릅니다.

작품 ‘트위스트’에서는 춤을 추는 여인의 모습이 여럿 겹쳐져 있어서 위치를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여인이 춤을 추었던 위치는 오로지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마치 양자 중첩의 상태처럼 말이죠. 이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위치에서 춤추는 여인의 사진을 촬영 및 인화하여 여러 장의 임시 필름을 만든 후에 검프린트 작업을 통해 다시 하나의 이미지에 담아냈습니다.

본 작품은 기증되어 이화여자대학교 연구협력관의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에 영구히 전시될 예정입니다.






미술공모전 심사평

비선형 세계의 탐험가들을 위하여

자본과 과학의 융성이라는 시대적 변화는 예술에 대한 총체적 사유와 지층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곧 새로운 창작 세계를 여는 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마치 불가분의 관계처럼 인류의 문명이 과학 문명과 조우한 이래 ‘예술과 과학의 만남’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제기되어왔습니다. 실제로 과학적 연구와 기술적 진보가 예술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며, 과학적 의제들을 예술적 언어로 다루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다소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두 분야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부분을 공유합니다. 과학이 발견과 발명으로, 예술이 창작으로 인간의 상상을 현실화 시켜준다는 데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자의 연구와 발견의 근저에는 이성과 함께 상상과 미에 대한 갈망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과학의 근간인 상상이야말로 예술가의 감성과 철학적 사고를 완성할 때 필수적인 것입니다.

나노라는 말의 유래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입니다. 나노 과학은 리차드 파인만의 선구안에서 태동한 학문적 개념,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이성과 비이성의 근원을 탐구하고 새로운 미래 문명의 설계를 가능케 합니다. 점은 미술의 기본 조형 요소의 하나로 예술적 창의와 상상을 구현하는 시작 지점입니다. <양자의 세계>는 나노와 점, 과학과 예술, 과학자와 예술가의 교집합에서 출발했습니다. 나노 과학이 기존의 과학과 기술이 부딪힌 한계를 뛰어넘고자 끊임없이 비선형의 세계를 탐구하듯, 출품작들은 각기 다른 조형적 언어로 때로는 충실하게, 때로는 다소 실험적인 태도로 고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은 융합의 시대 정신을 대표하는 흐름인 탓에 많은 전시가 종종 오직 그것의 당위성을 선언하는 해프닝에 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 공모전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나노’라는 지극히 작은 단위와 그 개념에서 사유된 예술가 본연의 사유와 성찰입니다. 과학자와 예술가는 모두 새로운 영역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탐험가이기도 합니다. <양자의 세계>가 두 분야 모두에 진전과 도약이 되어 ‘눈으로 볼 수 없는’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양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우리원



심사 위원

  • 강서경(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 폴 토마스(교수, 뉴사우스웨일즈대학교 아트앤디자인)
  • 우리원(학예연구사, 대전시립미술관)
  • 줄리안 보스안드레(미술 작가)
  • 신영미(미술 작가)
  • 김진경(연구원, 양자나노과학 연구단)
  • 안드레아스 하인리히(단장, 양자나노과학 연구단)